INTERVIEW: Akimitsu Homma X PORNOGRAFFITTI

 
그동안 수많은 아티스트의 프로듀스를 다뤄온 혼마 아키미츠. 그 중에서도 역시 포르노그라피티는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ak.homma"명의로 본인 최초의 토탈 프로듀스 및 작곡을 담당하여 「아폴로」, 「뮤직아워」, 「사우다지」, 「아게하쵸」 등의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냈습니다. 
10년 이상 긴밀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존중하는 두 팀의 협연이 「Akimimitsu Homma 60th Anniversary concert "RESONANCE"」에서 실현됩니다. 이틀간 어떤 세션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줄까요. 혼마와 포르노그라피티의 오카노 아키히토, 신도 하루이치 세 사람이 함께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의외로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여 더욱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기회이기에 실현된, 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소중한 "기록" 입니다. 
 


 

이렇게 세 분이서 인터뷰를 하는건 의외로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혼마: 그렇더라고요. 있을 법도 한데 말이죠
 

이렇게 마주보고 있으니 쑥스러운 기분이 드시나요? 

오카노: 보통은 그럴 것도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혼마: 포르노 라이브도 보러 가고, 연락도 하고 식사를 함께 하거나 하고 있어서, 오히려 이렇게 새삼스럽게 '제대로' 인터뷰를 하는게 신선합니다. 10년 이상 충분히 함께 작업하며 깊은 유대감이 있어서 그런지, 그때부터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는게 실감나지 않네요.
 

다시 한번 혼마상과 포르노그라피티의 만남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혼마: 아마 1998년에 도쿄 다카다노바바의 라이브하우스에서 타이반 라이브를 할 때 처음 봤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는 아직 제가 맡을지 어떨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죠. 아키히토는 철사가 들어간 스카프를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웃음)
 
오카노: 제 1기의 방황기였죠. (웃음) 
 
혼마: 무엇보다 아키히토의 목소리가 굉장했어요. 악곡은 비교적 심플했지만, 귀에 도달하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죠. 게다가 하루이치는 가사를 쓸 줄 알았고요. 목소리와 가사만은 타고난 재능과 자질이 컸습니다. 밴드로써 봤을 때 눈에 화려한 느낌도 있고, "강한" 부분을 함께 가지고 있었어요. 
 

포르노의 두분은 팀으로 프로듀서가 합류하고, 게다가 멤버 이외의 사람이 쓴 곡을 부른다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셨나요? 

오카노: 우리 자신의 근본에는 록밴드로써 유명해지고, 메이저 씬에서 성공하기 위해 확실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솔직히 처음에는 아주 수월하게 받아들인건 아니지만, (당시) 세 사람의 마음은 '받아들이자'는 쪽이었습니다. 
 
신도: 오사카의 라이브하우스에 관객이 어느정도 들어오게 되면서, 도쿄에 온 시점에서는 곧 데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뭐 시골뜨기의 발상이었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당시는 전혀 필사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여간 곡을 쓴다는 말을 들어도, 진지함이 부족했다고나 할까요. 
 

거기에 새로운 피(혼마상)가 들어와서 큰 자극을 받았군요. 

신도: 어느쪽인가 하면 퍼포먼스=라이브 우선으로 활동해왔기에 즐겁긴 했지만, 그래도 곡을 만드는데 필요한 음악적 지식이 부족하다는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혼마상이 합류해서 보여준 것들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오카노: 우리끼리만 해 나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혼마상이 제시해 주시는 것들은 그런 생각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의 퀄리티였어요. 역시 잘 팔리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팀과 시스템이 베스트라고 생각했습니다. 
 
혼마: 포르노는 멤버 모두가 곡을 쓴다는 장점도 있고, 각자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음악이 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음악에 대해 상당히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어떻게 세상에 내보낼지가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야가 넓어진 느낌인가요? 

신도: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시대보다 조금 앞서가는 것,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감지해서 그것을 엄청난 속도로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높은 효율이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팀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매우 컸고, 그것은 지금도 저희들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혼마: 아티스트의 자아라는건 분명 소중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억눌러주었던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도가 부족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팀이 어쨌든 포르노를 팔아보자며 사무소와 레이블이 하나가 되어 노력한 것이 결실을 보아 결과적으로 25년이나 계속하는 밴드가 되었습니다. 
 
신도: 아키히토의 노래와 우리들의 음악이 점점 평가를 받게 되었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한 앞서 말했던 '시대보다 조금 앞서가는 곡을 만드는 생산성의 속도'가 25년동안 계속할 수 있었던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혼마: 나오 키헤이 선생님께 "이번에 포르노그라피티라는 밴드를 맡게 되었습니다" 라고 보고했더니 "5년간 계속할 수 있는 밴드를 만드세요" 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아마 경험치에서 나온 말씀이었겠지만, 그 고비를 넘긴다면 계속 지속되는 밴드가 된다는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5년은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오카노: 깜짝할 사이였죠. 십여년에 걸친 혼마상과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희들은 없을 겁니다. 선도자적 존재셨죠. 
 
혼마: 가요곡(歌謡曲)은 아니지만, 귀에 잘 들어오는 음악을 하는 록밴드라는 컨셉으로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는 크리스토퍼 크로스 같은 느낌이 좋지 않을까?", "다음은 거친 하드 록으로 가보자" 하는 식으로 똑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고 다양한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가라오케에서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곡을 만들고 있었을 겁니다.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부를 수 없습니다...(웃음)

혼마: 부를 수 없더라도 부르고 싶어지는 곡 (웃음). 아키히토에게는 키나 음역을 신경쓰지 않고 곡을 던질 수 있어서 다양한 음악성을 가진 곡에 도전할 수 있었네요. 
 

혼마상에게서 들은 말 중 가장 인상에 남은 말이 있나요? 

오카노: "포르노그라피티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항상 고민해라"는 말씀이요. 당시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커리어를 쌓아갈 수록 그 말이 제 안에서 점점 커졌습니다. 
 
신도: 기억나요, 그 말씀. 
 
오카노: 그 말씀 덕분에 우리들이 방향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도: 말씀도 그렇지만, 역시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 스승이자 대선배이며 은인입니다. "기타의 이런 음색을 원해", "이런 프레이즈를 원해"라며 몇시간이고 함께 시행착오를 겪었던 시간이 좋은 기억이네요. 
 
혼마: 하루이치만이 낼 수 있는 소리, 오리지널리티 있는 기타 소리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포르노의 강점 중 하나였어요. 저는 건반 연주자라 기타를 그렇게는 치지 못 하지만, "이런 느낌의 소리를 듣고싶다"는 지식을 토대로 여러가지를 요청하며 함께 소리를 만들어갔습니다. 
 
오카노: 저도 5시간, 6시간도 욕심을 부리며 녹음한 적이 있었죠(웃음). 그래서 밤 12시도 넘어서 이제 슬슬 집에 갈까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혼마상이 "잠깐만 기다려, 악기 창고에 있는 ○○를 가져와 봐. 그거 넣어서 들어보고 싶어"라고 하셔서 결국 집에 못 돌아가고. (웃음) 
 
혼마: 그때는 체력도 예산도 있었으니까요. (웃음)
 
오카노: 레코딩을 정말 즐겁게 하셨어요. 그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셨고, 즐기면서도 철저하게 집착하여 작품을 완성한다는 그 자세는 따라할 수 없지만서도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데뷔곡 「아폴로アポロ」는 충격적이었죠. 아키히토씨의 압도적인 발음과 하이톤을 최대한 살린 긴 멜로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혼마: 처음에는 두번째 싱글인 「히토리노 요루ヒトリノ夜」가 데뷔곡 후보였는데, 타이업이 결정되면서 아폴로가 첫번째가 되었죠. 그 이전에 팀의 마음은 하나였는데, 승부곡인 「사보텐サボテン」을 어떤 타이밍에 발매할지, 어떤 프로세스로 거기까지 끌고갈 것인가 였습니다. 
 

그 말대로 2000년에 「히토리노요루」, 포카리스웨트의 광고음악인 「뮤직아워ミュージック・アワー」, 첫 오리콘 1위 곡인 「사우다지サウダージ」로 히트를 이어갔고, 「사보텐」을 발매하며 1위를 차지하여 포르노의 인기를 확고하게 했습니다. 작년에 방송된 「EIGHT-JAM」의 포르노그라피티 특집에서 멤버들이 꼽은 '혼마상의 대단함을 알 수 있는 곡'으로 오카노 씨는 「하네우마라이더ハネウマライダー」와 「타소가레로망스黄昏ロマンス」, 신도 씨는 「오늘 밤 달이 보이지 않아도今宵、月が見えずとも」를 꼽았습니다. 이 곡들을 이번 무대에서 들을 수 있을까요? 

혼마: 비밀입니다(웃음). 그건 이틀간의 라이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죠. 하지만 「혼마제2015~これがホンマに本間の音楽祭~」(*말장난이라 번역 안하고 일본어로 씀)를 위해 썼던 「사이고노스테이지最後のステージ」를 10년만에 다시 선보이고 싶습니다. 
 

「사이고노스테이지」는 2015년 혼마제에서 선보인 이후 어디서도 연주된 적이 없고 음원화도 되지 않은 환상의 곡이라 불리는 작품이죠. 

혼마: 모처럼이니까 새로운 편곡으로, 저번보다도 하루이치의 기타 솔로를 더 돋보이게 하고 싶습니다. 
 

작년 25주년을 맞이하고 다음 30년, 40년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의 포르노그라피티는 혼마상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있나요? 

혼마: 2023년에 발표한 히로시마현과의 콜라보송 「아비가나쿠アビがなく」나, 올해 발표한 「言伝ーことづてー」를 듣고 있으면, 이제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아티스트를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많은 사람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편, 매년 공격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즐거운 라이브로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죠. 그 "멋진 밸런스"가 정말 근사합니다. 롤링스톤즈나 폴 매카트니처럼 80세가 넘어도 멋진 존재로 남아서, 아이들이나 젊으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뮤지션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오랫동안 계속 해 주세요. 
 

포르노그라피티에게 지금의 혼마 아키미츠라는 음악가는 그 눈에 어떻게 비치나요? 

오카노: 혼마상이 저에게 해주신 말씀에  "포르노 팀을 떠나고 10년간은 처음 5년은 열심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남은 5년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즉 모두가 원하는 것을 하는 기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그 비전대로 하고 계시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폭 넓은 장르의 음악을 만들고 실적을 남기고 있는 프로듀서는 일본에 흔하지 않아요. 
 
신도: 「EIGHT-JAM」에서 특집으로 다뤄줄 정도의 프로듀서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인걸요. 
 
오카노: 말씀하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혼마상을 저희의 선도자라고 말씀드렸지만,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가시고 계시니까요. 물론 기쁘고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혼마상이 힘내고 계시니 우리도 더 힘내야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변함없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혼마제 후기는 안 쓰고 뒤늦게 인터뷰 번역
근데 딴것보다 이 인터뷰 사진이 사기야 이 팜플렛 하나 더 주워왔어야 했는데 ㅇ>-< 
 
本間さん을 혼마상이라 하지 않고 혼마씨<- 라고 하면 뭔가 너무 불경해지는 느낌이 있어서 그냥 혼마상이라고 번역함(ㅋㅋ
그나저나 혼마상 왜 독립 이후 최근 포르노곡 예시 두개가.........ㅠㅜ 이유는 알겠는데 그냥 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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